"그 시절 있었기에"…창업가 4인방 말하는 '내 인생 그때 그 순간' [긱스]

입력 2023-07-06 15:37   수정 2023-07-06 15:40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제이 엘리엇 전 애플 수석부사장은 1970년대 정보기술(IT)업계 '공룡'이던 IBM과 인텔에서 고위직으로 일한 '능력자'였습니다. 1980년 한 식당에서 허름한 옷차림을 한 25세 청년을 마주쳤습니다. 컴퓨터 얘기를 나눴는데, 이 청년이 가진 인사이트와 열정에 감명받았습니다. 어느 정도였냐고요? 이름도 못 들어본 청년의 초기 회사에 과감히 합류할 정도로요. 이 청년은 스티브 잡스였습니다. 이후 20여년 간 엘리엇은 왼손잡이던 잡스의 '왼팔' 역할을 맡아 애플의 경영 전반을 책임졌습니다. 후에 그는 이 만남을 '운명적 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도 인생을 바꾼 '그 순간'이 있습니다. 창업을 결심하거나, 경영 철학을 정립하게 된 계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한 사건은 무엇일까요? 한경 긱스(Geeks)가 김진우 라이너 대표, 엄선진 홈핏 대표, 이호진 알로하팩토리 대표, 최현웅 씨드앤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세계를 무대로 삼자"
생성 AI 스타트업 라이너의 김진우 대표는 지금의 사업을 하기 전 첫 창업 아이템으로 미술 커뮤니티 관련 스타트업을 세웠다. 2014년 아시아 100대 벤처기업에 선정될 정도로 성장 중이었다. 시상식이 열리는 홍콩으로 갔는데, 이 자리에서 아시아 유망 스타트업들의 피칭을 봤다. 이 때의 경험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김 대표는 "중국이나 인도 스타트업이 피칭에서 자기들이 200만명의 이용자를 벌써 확보했다는 내용을 듣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직 시장의 5% 정도밖에 점유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더라"며 "해외 시장의 규모가 국내보다 10배 이상 크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우리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이 순간은 '터닝 포인트'가 됐다. 무조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사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기존 사업을 접고 무작정 미국 실리콘밸리로 달려갔다. 라이너도 이 때 탄생했다. 이 시기 즈음엔 글로벌 거점을 미리 마련해두기 위해 현지 사정에 능통한 팀원을 영입하기도 했다. 게임빌 창업멤버인 조성문 차트메트릭 대표다. 당시엔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 오라클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구글을 이기겠다'는 김 대표의 패기를 믿고 아무것도 없던 초기 라이너 팀에 흔쾌히 합류했다.

'글로벌 지향'은 지금까지 라이너를 지탱해줬다. 30여 명의 직원들에게도 김 대표가 항상 강조하는 건 "국내 최고가 아닌 세계 최고의 팀이 되자"는 말이다. 직원 중 3분의1 정도는 외국인이거나 해외에서 살다 온 사람들로 구성됐다. 또 서비스를 만들 때 영어로 먼저 제작하고 나중에 한국어로 번역한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다.

라이너는 전 세계에서 한 달에 1000만 명 이상이 사용한 하이라이팅(형광펜) 서비스를 선보인 회사다. 최근엔 생성 AI를 활용 초개인화 검색 서비스로 무대를 넓혔다. 챗봇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두 서비스는 160개국 이상에서 매일 120만 번씩 쓰이고 있다. 김 대표는 "구글이 검색부터 메일, 운영체제, 브라우저 등 인터넷 모든 분야에서 활약하는 것처럼, 라이너도 인터넷을 열 때 사람들이 쓰지 않을 수 없는 회사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손잡고 맨땅에 헤딩했던 그 겨울날"
LB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파트너스, 패스트벤처스 등으로부터 누적 74억원의 투자를 받은 하이퍼캐주얼 게임 개발 스타트업 알로하팩토리의 이호진 대표는 26살이던 2012년 배달대행 스타트업인 푸드플라이의 초기 멤버로 일했다. 푸드플라이는 2017년 요기요의 배달대행 서비스 회사에 인수됐다.

이 대표의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은 칼바람이 살을 파고들던 겨울날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배민' 같은 배달 서비스가 활성화돼 있지 않았다. 배달이라고 해봤자 중국집이나 치킨집 같은 흔히 아는 곳들 뿐이었다. 그와 초기멤버들 대여섯 명은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 서울 논현동 거리에 나와 오프라인으로 전단지를 뿌리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먹는 음식을 집으로 배달시킬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저녁 7~10시가 주된 무대였다. 한 번 나오면 한 사람이 전단지 1000장을 뿌렸다. 끝난 뒤엔 근처 식당에 무작정 들어가 서비스를 홍보하기도 했다. 운좋게 주문이 들어오면 오토바이를 직접 몰고 배달을 다니기도 했다. 그런 생활이 몇 달 간 계속됐다. 다행히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주문 건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성과가 눈에 보였다. 이 대표는 "이 때 현장에서 구르면서 모두 '으쌰으쌰'하며 협업했던 게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며 "힘들 때면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 때도 했는데 이 정도 쯤이야'라는 긍정적 마인드를 갖게 됐다"고 회상했다.

40여 명 직원들의 리더가 된 지금 '협업'과 '긍정'이라는 키워드는 그에게 경영 철학이 됐다. 알로하팩토리엔 단순 부서들이 아닌 '셀' 조직이 있다. 아메바형 경영 방식이다. 독립적으로 일하면서도 협업의 효율성을 높였다. 조직별로 재무제표도 따로 만든다. 향후 이 팀들을 독립적인 스튜디오로 성장시키는 게 목표다. 이와 함께 개별 직원들에게도 회사의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주려 노력 중이라는 게 이 대표의 말이다.

"개발자 좀 뽑으라던 투자자의 조언"
엄선진 홈핏 대표는 스트롱벤처스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았던 때를 '그때 그 순간'으로 꼽았다. 홈핏은 트레이너가 직접 집이나 직장을 찾아 운동을 도와주는 방문 PT 플랫폼이다. 운동이 주력 서비스지만, 최근엔 요가나 명상, 미술 같은 '웰니스'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으로 영역을 넓혔다.

홈핏의 출발은 2016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생 시절 창업에 나선 엄 대표는 처음엔 대출 등을 합쳐 단 3000만원의 자금만 들고 사업을 시작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첫 1~2년은 사비를 털어서 팀을 운영했다. 성장을 위해선 투자를 받아야 했다.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의 배치 프로그램에 선정된 인연을 발판삼아 스트롱벤처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엄 대표는 "처음엔 투자를 안 해주시려고 해서, 몇 번이나 다시 미팅을 하면서 삼고초려했다"며 "첫 만남부터 투자를 받기까지 꼬박 6개월이 걸렸다"고 돌아봤다.

그는 배기홍 스트롱벤처스 대표의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인력 구성을 다시 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회사엔 개발 인력이 없었다. 개발자의 역할은 엄 대표가 대신 했다. 그러다보니 플랫폼은 조악한 모양새였다. 플랫폼의 퀄리티보다 서비스의 퀄리티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투자자의 눈은 그렇지 않았다. 그 길로 몇 달 동안 개발자 카페에 글을 올리고 티타임을 갖고 식사 미팅을 주선하면서 수십 명의 개발자를 만났다. 이 시기 만난 개발자 중 한 명은 지금 홈핏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재직하고 있다.

엄 대표는 이 시절의 경험이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줬다고 자평했다. 대면으로 이뤄지는 홈핏 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하면 좋은 '사람'은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홈핏 플랫폼에서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트레이너나 회사 인력을 채용할 때 일일이 직접 만나는 건 기본이다. 이 프리랜서들을 교육하는 팀도 따로 있다.

최근엔 세밀한 부분도 챙기고 있다. 그는 "예전엔 수업 후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들어보면, '강사에게서 김치찌개 냄새가 났다' '양말을 신지 않고 왔다' 같은 기본 예절에 관한 불만이 꽤 많았다"면서 "무조건 잘 가르치는 사람을 뽑는 게 정답이 아니고, 디테일에도 신경을 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플랫폼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여름 카페에서 우연히 본 광경"
최현웅 씨드앤 대표에게는 창업 아이템을 '번뜩' 떠오르게 해준 순간이 있다. 프롭테크 스타트업인 씨드앤은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건물의 에너지를 관리해주는 서비스 '리프'를 개발했다. 온도나 습도 같은 환경을 세밀하게 측정해 냉난방 효율을 높여주는 식이다. 기업 간 거래(B2B) 고객사로 투썸플레이스나 커피빈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나 H&M 등 로드숍 매장을 확보했다. 일찌감치 카카오벤처스의 투자도 받았다.

건축공학을 전공한 최 대표는 원래는 연구자의 길을 걷고 싶었다. 해외로 유학도 가려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건축공학 분야는 이미 어느정도 연구가 고도화돼 있어서 혁신적인 무언가를 이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한 교수님의 말을 들어서다. 갑자기 길을 잃어버린 느낌을 받은 그는 우선 건물 에너지 연구소에 입사해 일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냉방이 잘 되는 카페에 들른 그는 한 학생이 담요를 덮고 오들오들 떨면서 공부를 하는 모습을 봤다. 불볕더위에 담요라니, 평범하면서도 어딘가 어색한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찬찬히 둘러보니 부채질을 하는 사람과 긴팔을 입고 일하는 사람이 섞여 있었다. 그는 "내가 건물 에너지를 연구하는 사람인데, 막상 바로 옆에서 이런 모습을 보고 나니까 냉난방 분야에서 뭔가 혁신적인 창업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사소한 찰나를 포착했던 경험이 창업으로 연결됐다. 당연하게 여기던 일을 되돌아보는 것은 이제 습관이 됐다. 최 대표는 "일상에서 '저 전등은 왜 켜져 있어야 하지?' '저 콘센트가 꼭 쓰여야 하나' 같은 의문부터 하다 못해 양치할 때 물을 최대한 덜 쓰거나 박스를 버릴 때 겉면의 테이프를 세심하게 뗀다든지 하는 사소한 습관을 들였더니 사업에도 더 진정성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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